인간 수치화 현상
SNS 속 수치, 서비스업 종사자에 대한 평가, 얼굴과 학력 등에 점수를 부여하는 소개팅 앱은 인간간의 수치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처음 만난 사이에서는 SNS 계정을 묻는 질문이 오간다. 또한, SNS 친구 수와 반응 수가 많을수록 사회적 매력이 높고 보다 호감이 가는 사람으로 인식된다.
택시 기사, AS 서비스 기사, 은행 직원, 콜센터 직원 등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만날 때 한 번쯤은 평점을 좋게 달라는 부탁을 받아봤을 것이다. 손님이 어떻게 자신들의 평점을 주느냐에 따라 임금이 달라지고 자칫하면 해고당할 수 있다. 실제로 한 택시 업체에서는 5.0 기준으로 한 달 평균 별점이 4.8 미만이면 서비스 교육을, 3개월 간 평균 별점이 4.8 미만이면 해고당한다.
이와 같이 수치를 토대로 사람을 평가하는 현 사회의 현상이 발생한 원인과 그것이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양면성을 살펴보자.
인간 수치화의 원인
그렇다면 이렇게 인간간의 수치화는 어떻게 일상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었을까? 우선 공동체 생활에서의 탈피와 개인주의의 대두를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이전까지는 소규모 공동체 생활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점점 도시화가 이뤄지면서 대규모의 사회에서 개인주의가 두드러졌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금방 그에 대해 알기 어려워졌고 일회성 만남이 많아졌다. 그렇기에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자신을 보여주기 위해 SNS가 활발히 이뤄지기 시작했고 그만큼, 잘 모르는 남에 대해 쉽게 평가할 수 있게 되었다.
경쟁 사회의 심화에 따른 수치가 객관적이라는 인식도 원인이다. SNS의 반응 수가 많을수록 현대인들은 그 수치를 토대로 그 사람이 활발하고 친구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쟁 사회 속에서 더 자신을 부각해야하는 개개인들은 스쳐 지나가는 사람과도 ‘친구’를 맺고 자신의 게시물의 반응이 적으면 상심한다. 각각의 기업들은 다른 기업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소비자들이 서비스업 종사자들을 평가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마련한다.
인간 수치화의 긍정적인 면
인간 수치화 현상은 개인적인 측면에서 볼 때, 개인이 상대에 대한 정보를 쉽고 빠르게 알 수 있게 해주므로 자신을 발전시키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는 기업의 개선 방향에 대한 데이터가 되어 소비자가 만족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도와 줄 수도 있다. 퓨 리서치의 한 조사에서는 연애하는 미국 성인 중 15%는 만난 적이 몇 번 없어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상대의 성향과 정보를 습득하여 연인관계로 발전한다고 밝혔다.
이는 인간 수치화를 기반으로 하는 소셜 계정이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만나는 소통 도구로 활용된다는 점을 뒷받침한다. 또, SNS를 통해 자신의 작업물을 홍보하고 그에 대한 반응 수를 토대로 개선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좋아요와 공유가 활발한 SNS의 특성을 활용하여 꺼져가던 시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 지핀 시인들도 있다. 한 택시 회사의 경우, 평점에 따라 배차 혜택을 달리한다. 이 제도에 대한 최근 조사에 따르면 61.2%의 사람들이 사용자 경험과 서비스 품질 개선을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답했다. 이처럼 인간 수치화 경향은 상대에 대한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기업의 발전 방향을 제시한다.
인간수치화의 부정적인 면
인간 수치화 현상은 개인적인 측면에서 남에게 보이는 모습에 대한 집착과 그에 동반되는 우울증, 상대에 대한 평가를 당연시하고 평가로 말미암은 박탈감, 스스로가 지닌 가능성을 한정지을 수도 있다. 사회적인 측면에서는 슬랙티비즘의 심화, 갑질 상황의 증가, 외모지상주의 및 학력주의의 강화를 도래한다. 구체적으로 문제점들을 살펴보자.
SNS에서 처음으로 만난 사람을 그 사람의 좋아요 수, 친구 수로 평가할 때, 이는 SNS에 자신의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는 집착으로 변질될 수 있으며, SNS 상에서는 잘 사는 다른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자신의 현실에 대한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지난 20년동안 감소 추세였던 미국 10대 자살률이 2010년부터 증가한 원인이 소셜미디어 사용의 증가와 연결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었다.
슬랙티비즘도 심해질 수 있다. 슬랙티비즘은 게으름뱅이와 사회운동의 복합어로 딱히 사회운동이나 캠페인에 관심이 없으면서도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은 듯한 자신의 이미지 구축을 위해 좋아요를 누르거나 공유를 하여 관심 있는 듯 과시하는 현상을 말한다. 슬랙티비스트들이 많아질수록 사회적 이슈가 일회적 화제거리로 이용되어 문제의 본질이 왜곡되거나 정작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수 있다.
서비스업 종사자의 별점 제도의 경우, 소비자의 우월감과 종사자의 우울감을 심어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갑질 상황 증가의 원인이 된다. 실제로 한 인터넷 설치 기사는 고객의 무리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평가점수가 깎일게 염려되어 안전 장비 없이 급하게 작업에 나섰다가 목숨을 잃기도 했다. 또한 낮은 평가 점수로 인한 반성문 쓰기, 자아비판, 심지어 급여 삭감은 기사들의 우울증으로 이어진다. 우리나라의 심각한 문제인 갑질 문화는 한쪽 입장의 우위적 위치로 인해 발생한다. 별점 제도는 소비자로 하여금 종사자를 평가할 수 있는 우위적 위치에 서 있게끔하여 갑질 상황의 촉발 계기를 마련한다.
소개팅 앱 같은 데서 자신에 대해 평가받고 또 남에 대해 평가를 하는 상황은 스스로의 가능성을 한정짓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며 외모지상주의, 학력주의를 더 부각시킬 수 있다. 한때 큰 화제를 모았던 기맹기 작가의 ‘내 ID는 강남미인!’에서는 사람들의 외모를 보고 점수를 매기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는 자신의 외모에 대해서도 수치화하여 생각하여 자신의 가능성을 한계 짓는다. 큰 공감대를 이룬 이 웹툰은 결국 주인공의 모습이 현대인들의 모습과 비슷한 점이 많다는 점을 시사한다. 더불어 외모와 학력으로 점수를 매기는 경우, 사람들로 하여금 외모와 학력이 절대적이라는 생각을 하도록 함으로써 거기에 더 집중하게 만든다. 이는 외모지상주의, 학벌주의로 이어질 수 있으며 자칫하면 개인의 능력으로 평가받아야 하는 현대에 구시대적인 발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인간 수치화에 대한 대안
앞서 살펴 본 인간 수치화에 뚜렷한 장점이 있기 때문에 인간 수치화 경향은 확장될 수 있다. 하지만 사회 구성원들은 인간간의 수치화가 불러일으킬 수 있는 문제점들을 생각하며 주의해야 한다. 우선 개인들은 사람에 대한 수치가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과 자신의 가치가 결코 점수로 매겨질 수 없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사회적으로는 별점이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유일하고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는 인식을 지녀야 한다. 또 기업들에서는 별점보다는 불만 사항이나 칭찬 사항을 따로 적게끔 하는 등 별점 이외의 다른 방법으로 고객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는 방법을 구축해야 한다. 더불어 외모와 학력을 중시하는 사회의 큰 분위기부터 타파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가 개인 스스로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제도와 기반을 더 많이 마련해야 한다.
인간사이의 수치화가 절대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 SNS를 통해 그 사람에 대해서 미리 파악해 둘 수 있고 자신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 또 남이 붙여주는 자신의 삶에 대한 수치를 토대로 자신을 더 발전시킬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수치화 경향은 수치가 객관적일 것이라는 착각에 빠트려 개인의 특성, 인간의 존엄성을 무너트리는 시초이다. 개인주의와 경쟁 사회가 극심해지는 이 와중에, 개인은 자기 자신만큼은 열린 마음으로 남을 보고 함부로 평가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지녀야 한다. 사회는 사회 구성원들과 직장 구조가 다양성과 포용성을 더 중시할 수 있게끔 변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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