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빨리’ 문화
우리나라는 ‘빨리 빨리’를 매우 좋아한다. 빠름을 추구하는 성향 덕분인지 인터넷 속도가 빠르기로 소문났고, 근대에 독립한 어느 나라보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발전을 했다. 최근에는 신속한 배달을 제공하는 배달 서비스 또한 등장했다. 성급했기 때문에 우리는 물질적 편리함과 정신적 만족감을 누르고 산다. 하지만 빠른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2022년 1월 광주의 한 아파트가 건설 도중 붕괴되는 참사가 발생했다. 사고가 발생한 요인 중 하나는 빨리빨리 속도전이었다. 아파트를 기한 내에 빠르게 완성하기 위해 무리하다 보니 가장 중요한 안전을 놓친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속도전을 해결할 방법이 ‘느림’일 수 있다. 느림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신중함이다.
‘빨리 빨리’ 문화의 양면성
빨리빨리 문화는 우리나라가 현재의 상태까지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대표적인 예시로는 ‘한강의 기적’이 있다. 5 · 16 군사 정변으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 정부는 ‘근대화’를 나라 정책의 목표로 세우고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했다. 박정희 정부는 수출을 늘리는 정책을 선택했다. 1960년대에는 경공업, 1970년대에는 정유와 조선, 비료 등 중화학 공업의 비중이 늘어났고, 자동차 산업도 차츰 성장하기 시작했다. 성실하고 실력 있는 인력(노동력) 또한 수출해 일하게 했다. 정부와 국민이 힘써 노력한 결과, 우리나라 경제는 크게 성장했다. 1인당 국민소득은 1953년 67달러에 불과했지만 2000년에는 1만 달러를 넘어섰다. 수출은 1957년에 약 2,200만 달러이던 것이 2000년에는 1,700억 달러를 넘어섰다. 불과 30여 년 사이에 수백 배의 성장을 이룬 것이다. 빠름을 추구하는 성향은 우리나라가 지금의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빨리빨리 문화에는 부정적인 면도 있다. 우리나라의 빠름을 추구하는 성향은 냄비 성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냄비 성향은 ‘쉽게 끓어오르고 빨리 식어 버리는 성향’으로, 하나의 사안에 집중적이고 급격한 관심을 보이다가 지속되지 못하고 다른 사안으로 관심의 방향과 에너지가 전환되는 속성이다. 냄비 성향은 두 가지 현상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았는데, 하나는 사회적 쏠림 현상으로 나타나는 ‘급격한 동조’이고 다른 하나는 급격한 동조가 지속되지 못하는 ‘지속성 기대 붕괴’이다. 사회에서 어떠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사람들은 사건 발생 당시에만 집중하고, 후에 그 사건이 어떻게 해결되었는지에 관심을 가지는 경우는 드물다. 한 연예인이 학교폭력 가해자라는 소문을 들었을 때, 사람들은 그 소문을 검증하지 않고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후 욕하기에 바쁘다. 이는 ‘급격한 동조’에 해당한다. 그러나, 그 소문에 관한 관심은 지속되지 않는다. 조사 결과 사실이 아니라는 기사가 나오면, 그 많던 사람은 사라지고,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이러한 현상은 ‘지속성 기대 붕괴’이다. 이러한 냄비 성향은 섣부른 낙인화로 인한 소문 당사자에게 피해만 줄 뿐 위와 같은 왜곡 사건의 문제점에 대한 논의는 나오지 않기 때문에 부정적이다.
느림의 개인적, 사회적 효과
빠름이 아닌 느림을 통해 어떠한 개인적, 사회적 효과를 얻을 수 있을까? 개인은 자신을 좀 더 살펴보고, 자신에게 더 적합한 것을 찾을 수 있다. 남들의 시선과 시간에 쫓겨 결혼과 같은 일들을 빨리 해치우려고 했을 때, 후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통계청에 의하면 2021년 혼인 지속기간 별 이혼률은 0~4년이 전체 이혼의 18.8%로 가장 높았다. 2017년 기준 이혼사유별 이혼 건수는 성격차이가 106,032 중 45,676으로 가장 많았다. 이러한 수치는 단순히 결혼을 빨리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시간을 들여서 자신과 잘 맞는 사람과 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남들은 다 결혼했는 데, 본인은 늦었다고 급하게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느려도 괜찮으니까 본인을 위해서라도 결혼을 생각하는 상대와 여행, 동거 등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봐야 한다. 이러한 느림을 통해 자신이 가족이 아닌 타인과 함께할 때, 어떠한지를 알 수 있고, 자신과 잘 맞는 상대를 만날 가능성이 높다. 느림은 뒤처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나아가는 것이다.
느림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사회적 효과에는 여유로워진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느리게 살자’는 뜻을 담고 있는 ‘슬로시티’가 생겼다. 슬로시티는 빠른 속도와 생산성만을 강요하는 빠른 사회, 즉 ‘빨리 그리고 많이’에서 벗어나 자연·환경·인간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여유 있고 즐겁게 살자는 취지로 시작되었다. 빠른 속도만을 추구하며,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슬로시티를 통해 여유를 즐기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자신에 대해 알아간다. 슬로시티와 같은 익숙해진 현대 문명과 잠시 거리를 두고 느리게 사는 것은 빠른 속도에 지친 사람들이 도시에서의 예민함, 힘듦을 잊게 한다.
최근 몇 년간 ‘느리게 사는 것’에 대해 다룬 영상컨텐츠가 꽤 나왔다. 김태리 주연의 ‘리틀포레스트’, tvn의 ‘삼시세끼’ 등 이른바 ‘힐링 물’을 사람들이 많이 소비했다. 이 영상들은 도시에서의 분주함과 경쟁의 치열함을 내려놓고, 패스트푸드 대신 직접 슬로푸드를 만들어 먹으며 생활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이러한 컨텐츠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영상의 편안하고, 여유로운 느낌에 대한 갈망이 사람들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매일 바쁘게,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빨리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조금이라도 느리게 살게 된다면, 느림을 담은 영상을 통해 본 여유로운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경쟁과열로 인한 서로에 대한 미움, 지침이 주를 이루는 사회가 아니라 공동체 의식을 통해 서로에 대한 존중과 관용이 주를 이루는 사회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나를 찾기 위한 느림!
탁닛한은 서두르면 저 자신을 잃어버리고 서둘러야 한다는 생각에 끌려갈 것을 알기에 걸음과 호흡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고 했다. 그리고 걸음마다 안정된 느낌을 즐기고 계단을 오를 때면 기쁨을 만끽하며 걸으라 했다. 그러면 걸음마다 최선의 에너지를 생산하고, 그것을 다시 세상으로 내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탁닛한의 말은 현대 우리 사회가 놓치고 있는 느림의 필요성에 대해 시사한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빠르게만 살다 보면 자신을 잃게 된다. 그렇기에 우리 사회는 일 할 원동력을 주는 빠름의 장점은 살리되, 각 개인이 자신을 파악할 수 있게 하는 느림의 장점 또한 받아들여야 한다. 빨리 도달하는 것만이 성공을 위한 길이 아님을 깨닫고, 모든 속도는 의미가 있으니 이를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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