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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현안

촛불혁명의 기억, 계엄망령!

by 지적인 사과 2023.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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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피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은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어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 김수영, <푸른 하늘을> 중에서
 
시인 김수영은 1960년 4.19일 민주주의 혁명이 일어난 후, 1960년 6월 14일 이 시를 썼다. '자유'에는 '희생'이 따른다는 것, '혁명'은 '고독하다'는 것이 골자다. 4.19민주주의 혁명은 고등학생에서부터 시작하여 대학생, 교수, 일반인 등 많은 시민이 부정한 정부와 맞서 죽음의 위협을 무릅쓴 ‘시민불복종운동'이었다.
시민불복종의 주창한 로크에 의하면 정부는 "사회구성원의 생명, 자유, 재산을 보호.유지하는 것 이외의 다른 목적과 다른 척도를 가질 수 없다"고 하면서 정부가 국민과의 계약 목적에서 어긋날 때, 국민은 복종의무로부터 벗어나 정당하게 저항하는 것이 허용된다. 이러한 주장에 동의하듯 4.19에 동참했던 시민들은 치열하게 목숨을 내놓고 투쟁을 했다.  민주주의를 이땅에 실현시키기 위해!!
  4.19혁명은 우리의 현대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지만 몇몇의 연구자들은 정치세력에 대한 혁명이 없었으므로 안타깝게도 미완의 혁명으로 남았다고 평가한다.  미완의 혁명이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듬해 5.16 쿠테타로  기나긴 암흑의 시대-민주주의 억압의 시대-가 전개되었다. 

희생과 민주주의 

  수많은 시민의 안타까운 희생을 디딤돌로 삼아 우리는 식민지에서 독립한 나라 중 가장 민주적인 사회를 만들어 왔다. 이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우리 군인에게 선량한 국민들이 희생되는 안타까운 사건도 벌어졌으며, 1987년 6월 10일 전국적으로 태양보다 뜨거운 민주화 운동으로 대통령선거 방식도 바꾸는 등 군사정권에서 한 발씩 멀어져 갔다. 물론 그 동안 군사독재에서 국민들의 기본권이 제한되는 계엄령의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시냇물이 자연스럽게 흘러 강을 지나 바다로 가듯 역사의 물줄기도 시민들의 끊임없는 열망과 희생에 추동력으로 민주주의 사회를 이룩했다.
 
 
1949년 11월 24일 계엄법이 제정된 후, 1950년 한국전쟁, 1952년 부산정치파동, 1960년 4월 혁명, 1961년 5 · 16 쿠테타, 1964년 6 · 3항쟁, 1972년 10월 유신, 1979년 부마민주항쟁과 10 · 26사태, 1980년 5 · 18 광주민주화 운동 등에서 계엄령이 발동되었다. 국가 비상사태보다는 정치적 혼란을 제압하고 독재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계엄령을 남용한 경우가 대다수였다.

위대한 민주주의 혁명 '촛불' 과 계엄

 
   2016년 10월 말부터 대통령와 그 측근들의 비리가 무차별적으로 터져 나오면서 '시민불복종운동'인 촛불 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2017년 4월까지 진행되었던 촛불 혁명을 일으켜 우리는 대통령을 탄핵하고 그 측근들을 단죄하면서 그 위대한 여정을 마무리 했다. 그 촛불의 위대한 여정에서 광화문과 시청을 잇는 도로에서백만여 명의 시민들은 질서정연하게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으나, 항시 위험한 소문들이 이리저리 떠돌았다. 그 중 가장 위험한 소문은 국민의 기본권이 제한되는 '계엄' 선포였다. 계엄령의 망령에 누구나 몸서리치면서 다시는 역사의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각오로 추운 겨울을 광화문 길가에서 목이 터져라 우리의 요구를 청와대에까지 보내고자 노력했다.
  다행히도 김수영이 말한 자유에는 '희생'이 따르는 극한의 상황은 오지 않았으며,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가 된 것처럼 질서정연하게 권력이양이 진행되었다. 그런데 이후에 밝혀진 충격적인 사실은 소문이 어느 정도 사실이었다는 것이다.
  2016년 11월부터 계엄문건을 작성하여 2017년 2월 중순까지 기무사령관 조현천이 청와대에 4차례 방문하였던 기록이 있다는 소식과 그 방문이 계엄과 연관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시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눌 계획도 세웠다는 사실에 시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계획을 주도하였으나 실행에 옮기지 못한 채 미국으로 도피한 전 기무사령관 조현천이 미국에서 최근에 "도주한 것이 아니라 귀국을 연기했을 뿐"이라며 당당하게 자진 귀국해서 감옥에 갇혔다. 하지만 그의 죄목은 '내란 음모' 혐의가 아닌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혐의였다. 그가 제시한 계엄 문건이 실행되었으면, 한국의 현대사에 가장 큰 비극이 되었을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다시는, 다시는 시민들의 바른 요구와 정당한 권리인 집회 결사의 자유를 무도한 폭력으로 진압하려는 계획까지도 세울 수 없도록 강력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  지난 촛볼의 명령으로!! 깨어 있는 시민의 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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